일상다반사

영화 '어른 김장하' 감상문

진지구축 중 2024. 1. 12. 12:15

 영화를 본 날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히 지났으나 기록에 남겨야 겠다 싶어. 기억에 남는 것을 옮겨야 겠다. 두리뭉실하게 말이지.

 

 김장하 선생은 19세에 진주 근방에서 한약방을 열었다. 박리다매를 전략으로 삼았으며 근처 약방보다 싸게파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줄을 서서 약을타는 유명한 약방이었다. 한 번 온 손님이 소문을 내어 진주 주변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줄을서서 약을 사갔다. 싸지만 약재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아 신통하게 들으니 더 찾았을 테다. 김장하 선생은 병자에게 약을 비싸게 파는게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싸게 파니 많은 병자들을 도운 셈이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계기가 궁금했으나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냥 선한 마음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음을 알려준다.

 

 약을 팔고 남는 이윤은 적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가니 금세 부자가 되었다. 김장하 선생은 부자가 되어 공부는 곧 잘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김장하 선생은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도 학생이 어떤 삶을 선택 하건 간섭하지 않았다. 김장하 선생은 스스로를 못배운 사람이라 생각해서 겸손했으며 쉬는 시간에는 책을 보며 공부를 했다. 책장에는 의외의 포토샵 책이 꽂혀 있었다. 역시나 겸손해야 새로운것도 시도할 수 있는 듯 싶다. 겸손은 아마도 비움과 맞닿아 있는 듯 하다. 김장하 선생의 책장을 훑어보는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김장하 선생의 장학금 덕에 성공한 학생으로는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있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오가는 질의 응답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갔더니, 선생님께서는 자기에게 고마울 것은 없고 자기는 이 사회에 있는 것을 주었을 뿐이니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했다고 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또 다시 회상하게 된 그 때 그 당시의 마음이 떠올라 벅차오르는 듯 했다. 나도 눈물이 뚝뚝 흘렀다. 가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보고 난 후로도 남아있는 빛나는 장면이다.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청문회 당시 재산형성 과정이 깨끗했다고 평가 받았다. 장학금의 의미를 새기며 살았던 것 같다.

 

 때로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스님이 되기도 하고,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다. 

김장하 선생은 말했다. “줬으면 그만이지”. 

주고나서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명덕신민이라는 건학이념으로 명신고등학교를 세웠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노태우정권의 사립학교 탄압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무척 힘든시간을 보낸 시간이었던듯 하다. 김장하 선생은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사람들은 김장하 선생이 탄압에 굴복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아닌듯하다. 김장하 선생은 일찍이 학교를 세울 때 어느 시점에 헌납하기로 했었던 것 같다. 마침 그때가 그때였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자, 문재인 대통령 후보자가 유세 중에 김장하 선생의 약방을 찾았다. 차를 내주며 차를 마셨을 뿐 별말은 없었던듯 하다. 김장하 선생은 내세울게 없다고 생각하여 가타부타 말을 거들지 않았던듯 하다. 노무현 후보는 선생을 뵙고 나오면서 참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영화 도중 누군가 선생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다. “정치는 왜 안하셨어요?”

김장하 선생은 정치가 싫다고 하셨다. 반골기질이 느껴졌다. 나는 요즘 정치가 아니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정치는 나에게 정책인데 뉴스에서의 정치는 권모술수와 벌거벗은 욕망들이 대부분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선생께서도 이런 정치가 싫으셨을 듯하다.

 

 세월은 피해갈 수 없는 듯 했다. 지방은 쇠락하고 약방은 예전같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느 젊은 요리사가 사업자금을 융통하고자 선생을 찾아왔다. 그 젊은 요리사에게 선생은 보시다시피 한약방이 사양산업이라 사정이 이래서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외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알 수 없으나 젊은 요리사는 선생을 뵌 이후로 식당을 차리게 되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김장하 선생의 뜻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며 산다고 했다. 

 

 평생 자동차를 사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먼거리는 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진주바닥에 김장하 선생을 안 태운 택시기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도 어찌보면 나눔 이었을 터이다. 김장하 선생은 가게 월세를 어느시점 이래 한번도 올리지 않았다고 하니 거의 공짜였을 것이다. 김장하 선생 건물에 세들어 있는 자전거 가게 주인은 참으로 고마워했다.  

 

 선생은 뜻밖에도 야구를 좋아했다. 원래는 롯데 팬이었으나 지금은 NC로 갈아탔다고 했다. 여가 시간에는 등산을 자주 가시는 듯 했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산을 오른다고 했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오르니 산을 오를 수 있는 듯했다. 그에반해 나는허황된 꿈을 단번에 오르려니 숨이 가빠 매번 실패했나 보다.  나는 선생을 찾았던 젊은 요리사처럼 살 수 있을까? 응 살수 있다. 나도 이처럼 아름답게 살 수 있다. 나도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동훈 감독, 영화 '외계+인' 감상문  (2) 2024.02.10
후지필름 'XF10'의 추억  (1) 2024.02.09
택격 수련중  (0) 2023.12.25
나의 '로시난테'  (0) 2023.09.20
너에게 닿기 위해 쓴다.  (0) 2023.09.15